신사동호랭이 사망
한국의 음악계에 큰 충격을 안겨준 신사동호랭이 작곡가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었으나, 주변인들에게는 이를 털어놓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많은 가요계 관계자들이 그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그들에 따르면 신사동호랭이는 몇 년 전 사업 문제로 인해 채무를 감당하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최근에도 그는 돈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 중 한 명은 최근에 그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그 금액이 10만원대였다고 전했다.
2017년에는 법원에 회생신청을 한 적도 있는데, 그 당시에는 사업 문제로 채무가 발생하고 회수하지 못한 자금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받아들여 신사동호랭이의 채무의 70%를 10년에 걸쳐 갚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보유한 일부 저작권을 처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가까운 지인 중 한 명은 어젯밤까지도 그와 통화했을 때 우울한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보이그룹 TAN의 컴백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그러나 이 날 작업실에서 그를 발견한 지인이 119에 신고했지만 끝내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죽음으로 음악계와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신사동 호랭이 나이 프로필
본명: 이호양
소속 : 바나나컬쳐 대표프로듀서
학력 : 보성고등학교 졸업
데뷔 : 2005년 자두 4집 앨범 '남과 여' 작곡
경력 : 바나나컬쳐 대표프로듀서
수상 : 2013.11. 제5회 멜론뮤직어워드 송 라이터상
신사동호랭이(이호양)는 전남 광양에서 태어나 부모님과 함께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의 생활을 보내며 음악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
어릴 때는 아버지의 사내 사물놀이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며 음악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고, 광양제철 초·중·고교에서의 학교 생활은 학내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는 바이올린부터 트럼펫, 심지어 형의 드럼까지 다양한 악기를 배우며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럽게 키웠다.
하지만 서울로의 이주 후에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주요 기획사 오디션에 참여하고는 떨어지며, 고교 2학년 때부터는 소규모 기획사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비용 문제로 인해 반지하 방에서의 생활과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음악 관련 아르바이트 뿐만 아니라 찜닭집 주방에서 요리를 하거나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신사동 호랭이’라는 예명으로 편곡 및 작곡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야 시작되었다.
2008년 발매한 쥬얼리의 앨범에서의 편곡은 그의 인지도를 한층 끌어올렸고, 이후 그는 수많은 곡을 히트시키며 한국 음악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음악을 향한 열정과 헌신의 결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사동 호랭이 히트곡
티아라의 ‘롤리폴리’와 ‘보핍보핍’, 시크릿의 ‘매직’, 트러블 메이커의 ‘트러블 메이커’, 포미닛의 '핫 이슈', 에이핑크의 '노노노', EXID의 ‘위아래’와 ‘아 예’(AH YEAH), 그리고 모모랜드의 ‘뿜뿜’, 비스트의 ‘픽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과 노력으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그의 존재가 컸었다.
그의 작품들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뿐만 아니라 저작권료로 연간 수억대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신사동호랭이 최근까지의 근황
AB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2012년 걸그룹 EXID를 선보인 이후 근래에는 티알엔터테인먼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재직하며 2021년 걸그룹 트라이비를 선보였다.
트라이비는 이날 KBS2 ‘뮤직뱅크’를 통해 컴백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으나 신사동 호랭이의 사망 비보에 활동을 전면 중단했다.
소속사는 “금주 예정돼 있던 ‘다이아몬드’ 컴백 일정이 취소 및 연기돼 안내드린다”며 “방송을 포함한 스케줄은 추가적으로 안내 드릴 예정이며 팬사인회를 비롯한 팬 이벤트 일정의 경우 추후 공지를 통해 재안내 드리겠다”고 밝히며 양해를 구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